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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산상수훈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생명의 말씀사

존  스토트의 산상수훈                존 스토트 지음/ 정옥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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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7장을 산상수훈이라 말하는데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하는 성품과
행동 8가지를 보이는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강조하여 기록했다.
이스라엘의 지형이 평지와 사막,구릉으로 구성되었는데 약간 높은 언덕을 마태는
산으로 누가는 평지로 보았고 누가는 마태의 산상수훈을 대폭 요약 기록했다.
성경 전채의 본질적 주제는 이것이다.하나님의 역사적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백성을 불러 내시고 세상과 구별된 순종하는 "거룩한"백성이 되고 이 백성의
소명은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한 즉 모든 견해와 행동이 "거룩한" 또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산상수훈은 신약 전체중에 기독교적 대항문화를 온전하게
묘사하는 본문이다.기독교적 대항문화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며,충만한 인간적
삶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삶이다.

팔복을 상세히 살펴보면 처음 네 가지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관계로 묘사하고
다음 네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대한 관계와 의무를 묘사하는 것으로 구분 할 수 있다.
1.심령이 가난한 자(3절) 2.애통하는 자(4)  3.온유한 자(5) 4.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6절) 5.긍휼히 여기는 자(7) 6.마음이 청결한 자(8) 7.화평케 하는 자(9)
8.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10.12)
예수님의 모든 가치관과 기준들은 세상에서 흔히 받아들여지는 가치관 및 기준
들과 정면 충돌한다.세상의 복의 판단은 물질적 영역이나 영적 영역에서 풍족한
것을 말한다..애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태평스럽고
아무걱정 없는 사람이며 온유하고 온순한 사람이 아니라 강하고 자신만만하며
배부르고 다른 사람 일에 개입하여 "긍휼히 여기는"일이나 "화평케 하는 일"같은
공상적 박애주의에 시간과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의 청결보다 필요에 따라 
정직하지 못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박해를 받을 이유가 없고 안전하고 인기있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다.틸리케(Thielike)가 말했듯이 "누구든지 예수님과 교제를
시작하는 사람은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킨다.예수님은 세상이 가장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을 경축하시고 세상에서 거부 당한 사람들을 "복되다" 칭하신다.

주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다.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마5:21)  육계명에 분노와 모욕이 살인에 해당한다고
확장하셨다. 형제에게 "라가"(아람어 -쏙이 빈.- 얼간이 numskull.bonehead)라고
상대방 지성을 모독하는 말까지 살인에 포함하셨다. 우리는 산상수훈 후반부에 와서 
읽을 때 절망에 빠진다.거기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본다.다른 뺨도 들이대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나? 아담의 후손으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내적인 의의 법이기
때문이다.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죄의 대속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복음을
받고 회심과 중생에 대한 체험과 성령께서 내주하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된다.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주시는 복임을 알 수 있다.그리스도인은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비판자(Criticism)와 위선자(Hypocrisy)가 되어서는
안된다(마7:1--5)

다른 종교의 신봉자나 무종교자도 산상수훈이 자명한 진리라 받아들인다.그리고는
그들의 오해가 예수님을 최고의 도덕 윤리만 있고 교의(Dogma)가 없는 단순 소박한
의의 선지자나 성인 또는 인간 교사에 불과한 선을 행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분으로
세상 성인과 같이 판단한다.산상수훈의 설교자 예수님은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산상수훈의 말씀같이 초자연 적이고 교의적이고 신적인 말씀과 행위를 지속하셨다.
그의 가르침은 독특하고 기독교 대항문화와 급진적 제자도에 대한 그의 요구가 있다.
산상수훈의 모든 청중들이 마태7장 29절에 "가르치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하였다.이 설교자의 권위(權威.Authority)는
자신은 보냄을 받았고(마10:40.15:24.21:31)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위(마11:27)
심판자로서의 권위(마25:3) 하나님으로서 예수의 권위(마 7:21)로 말씀하셨기에
권세가 있었고 세상의 감동과 달랐다.주님은 단순히 알고만 있는 지식의 위험을
지적하신다. "누구든지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 그집을 반석위에 지은----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딭
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경고 하셨다.
17세기 로마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그리스도교의 윤리의 근본인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이 성구를 금으로 써서 거실에 붙여 황금율(Golden rule)
이란 단어가 유래되었듯이 우리들도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 가라는
가르침을 가슴깊이 세기고 실천해야 할것입니다.  ------  끝 ---------

2020. 9.22  金  鍾  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