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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 바흐,당신이 옳았었다.
포이어 바흐(Feuer Bach)의 종교에 대한 분석의 말이다.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면
원초적 두려움에 대한 응답 또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에 자신을 맡겨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인간은 스스로 폭풍을 향해 직접적 행동을 할 수 없어나 신이
일으킨 것이라면 신의 분노이므로 그 노여움을 잠재울 방법을 알고 있다.
나의 과오를 인정하고,나의 죄책을 인정하면서 경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제물로 같은 잘못을 저지러지 않겠다 맹세하고 나에 대한 신의 분노는
희생될 제물에게 전가 시킨다.포이어 바흐가 인간이 발명해낸 신들은
미지의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쉽게 설명한다고 말한 것은 올바른 지적
이였다.결국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모두 신들을 통해 풀리고 설명
되었어나 이러한 기교는 한계가 있었고 참된 설명 즉 과학적 설명이 등장할 때 
이때까지 세계를 설명해 주었던 신의 위엄있는 모습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의학의 발달은 주술과 영혼 그리고 마귀들과 의학의 신을 쫓아 낸다.
과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인간이 발명해낸 신들은 미지의 것과 이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손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란 포이어 바흐가 말한
것은 올바른 지적이였다.

포이어 바흐 이후 오귀스트 콩트(August Cornte)는 다양한 사회적,역사적
문제에 대하여 추상적 사변을 배제하고 과학적,수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했다.그의 유명한 삼단계 법칙은 인간 지식의 발전 단계를 설명함에 첫 단계는
신학적 단계이고,둘째 단계는 형이상학적 단계며,마지막으로 실증적 단계
즉 참다운 과학적 지식의 단계라 주장했다.지식이 증가하면서 우리들이
모르는 세계가 줄어 들었고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켰다.우리가 하나님의
필요로 하는 영역이 계속하여 줄어들고 있다.암브로와즈 빠데(Ambroise
Pare)가 말했듯이 우리가 예수에게 떡 두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를 가져다
준 복음서의 이야기와 매우 동떨어진 상황 가운데 있다.그리고 예수는
부족함 없이 오천명을 먹이셨다.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하나님의
큰 기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즉 참된 기적은 어떤 개입 없어도 즉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다.개봉 심장 수술,달 위를 
걷는 사건도 하나의 기적이다.그러나 하나님이 거기에 나타나실 필요는
없다.예기치 못한 사건과 실폐하면 즉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러면 실폐와 재난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 인가?그럼에도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었다.하나님은 이 역사 안에서 더 이상 할일이 없다.이러한 사실을 
통해 포이어 바흐가 우리가 집단적으로 종교적인 것에서 벗어 났다는 것을 
이해한다.인간이 선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절대자에게 투사(投射)하면서
이 거짓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인간의 정의,선,순결,자유 이러한
가치들을 결코 실현할 수 없기에 절대적 선을 가진 절대적 존재 생각하고
인간은 종교를 발명해 낸다.그러나 이는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우리가
멀리서 절대적 정의를 보고 있는데 왜 기까운 곳에서 보잘것 없는 우리의
정의로움이 무슨 필요가 있나.예배 참석만 하면 된다는 태도다.기도하고
선의를 기대함으로 충분하다.포이어 바흐가 증명한 종교적 과정은 근본적
으로 마르크스의 이론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포이어 바흐의 발언은 종교심을 해체했고 과학의 도래와 함께시작한
기독교의 와해에서 기독교를 구해내는데 일조(一助)를 했다.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종교심의 영역은 혼자
지탱할 수 없어므로 설명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거짓된 설명은 결국
종교심을 파괴한다.그러나 사랑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과학적인
시각에서 공격할 수 없고 견고한 땅에 있어며 인간 관계의 열쇠,
사회 안에서 삶의 가능성 이며 또한 거기에 과학의 발전이 의존하고
있다. 인류의 깊숙한 역사를 거슬러 기독교의 두려움에서 오는 종교심,
가치의 절대화,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인간을 박탈하는 것들을 분리하는
것은 인간이 더욱 인간이 된다는 사실이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인간을 신격화하는 수직적 신학에 대립하는 수평적 신학과 성년이된 
기독교 실천을 위해 그리스도가 "높은 곳에"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이라는 지극히 문자적 용어이고 중세적 종교심을 반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그리스도가 작고,가난하고,비천한 사람들 각자에게 
즉 우리의 형제들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타인을 사랑하려면 그 
사람의 조건 안으로 들어가야 유용하다.하나님이 다른곳 아닌 예수의
인간성 속에 그리고 사랑의 모델인 그리스도에게 있다.그는 거기에 
계시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의 죽음의 신학과 수평적 신학은 오늘날 기독교의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한다.                       -----  끝 -----

마침내 드러난 "의심을 거친 믿음"  자끄 엘륄 지음  임현근 옮김
 대장간 <2장 "포이어 바흐,당신이 옳았다" 중 요약2021.5.11. 金 鍾 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