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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도덕
도덕적 완벽함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임이 분명합니다.우리는 생각할 때
도덕이 우리를 간섭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하는 훼방꾼이라 생각하나
어떤 기계든 사용법을 배우려면 "그렇게 하면 안돼" 라고 줄기차게 지도교사의
지적을 듣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도덕에 관하여 세가지 사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편대를 지어 항해하는 배에 비유한다면 항해가 성공하려면 첫째 각자의 
항로를 방해하지 않고 서로 충돌하지 말아야 합니다.즉 개인이 공평하게 처신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둘째는 적합한 항해를 위해 양호한 엔진과 선박의 정리 
정돈이 잘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이는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정돈,조화
시켜야 합니다.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쎗째로 선단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점입니다. 인류의 삶  전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목적,즉 인간은  무엇을 위해
창조 되었는가.이는 선단이 가야할 경로가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습니다.여기서 
조정이 불가능한 낡고,결함 투성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은
잘못이 아니므로 자기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인간이 불멸하다는 믿음은
다른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기독교가 참이라면 영원히 살 인간에 비해 국가나
문명의 생명은 한 순간에 불과하므로 개인은 비교 불가능한 중요한 존재입니다.
바로 세번째 분야에서 기독교의 도덕과 비기독교의 도덕 사이에 차이가 납니다.

옛 사상가들의 도덕을 구분하는 7가지 " 덕목"(德目items  of virtue)을 말합니다.
4가지의 기본 덕목(Cardinal virtue)과 3가지의 신학적 덕목(Theological virtue)이
라고 합니다. 첫째 분변력(Prudence)은 실생활에 적용되는 양식(良識-훌륭한 식견)
을 뜻하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고 결과가 어떨지 심사숙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하나님 나라 갈 수 있다는 말씀을 착하기만 하면 어리석어도
괜챦다고 오해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해 사도 바울의 지적 처럼 지성의 영역에서
아이 같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고린도전서14장20절) 하나님은 게으름뱅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지적인 면에서 게으른 사람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절제(節制 Temperance)로서 온갖 종류의 쾌락을 완전히 삼가한다는 뜻이
아니라 적절한 정도까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이유로 술,담배,도박적 오락 등등 절제와 포기가 좋다고 생각하나 그런일
자체가 악하다 말하는 순간, 그런 일을 한 사람을 경멸하는 순간, 그는 잘못된 길로
접어 드는 것입니다.현대에 "절제"라는 말은 너무나 절실하게 들립니다.음주,골프,
애완 동물,PC게임등 전자기기 등 등  "무절제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쎗째는 정의(正義 Justice)로써 우리가 "공정함"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정의"라
하며 정직함,공평한 교환,성실함,약속 지킴등 삶의 모든 부분이 포함됩니다.
네째는 꿋꿋함(Fortitude)으로 고통 속에서 "버티는"용기와 위험에 맛서는 
"배짱"(Guts)입니다.이 덕목이 없다면 어떤 덕목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특정 행동만을 덕목으로 여긴다면 그릇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마지 못해서,
여론이 두려워 이러한 동기로 옳은 행동을 한다해도 내면의 특질이나 성품, 즉 "덕목"
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덕목"은 현세에 필요하고 내세에는 위험과
다툴일 없으므로 필요 없을 것이다.다음 세상에는 정의와 용기있는 행동이 필요
없을지 모르나 이곳에서 해야만 형성될 수 있는 됨됨이가 요구될 것이다.이러한
특질이 내면에 없는 사람은 아무리 외부 조건이 좋은 곳도 "천국"이 될 수 없는
즉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변치 않는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 도덕을 말할 때 먼저 분명한 것은 이영역에 특별한 도덕을 설파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아닙니다.모든 사람이 속으로 옳다 생각한 바를 요약하고
일깨워 주었습니다.첫째로 정중함은 기독적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鄭重- 진지하고
거룩하다.디모데전서 3장 8절)둘째로 기독교 도덕을 말할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태 7장12절)"이 말씀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 통용되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원칙을 일깨워 줍니다.기독교는 배고픈 이에게 먹을것 주라 할 뿐
조리법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기독교는 인간의 정규적인 예술,학문의 자리를 
차지하려 않으며 오히려 학문과 예술이 기독교의 뜻에 따르면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올바르게 하는 관리자 역활을 합니다."교회가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은 실천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남을 대접하는 원칙을 가지고 사회 각분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째는 자선(慈善 Charity)으로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것을 기독교 도덕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양과 염소의 무시 무시한 비유를 보십시요.마태복음 25장31절
부터 46절까지)또한 구약시대로 부터 신약시대 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충고로서
경제적 이른바 투자라 볼수 있으나 과도한 고리대금을 금했습니다.또 누구나 일을
해야 하며 그 이유가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에 4:28)
자선의 양의 기준은 정해있지 않지만 자신의 수입에 비해 높은 안락한 생활과
사치품과 오락등 과도한 지출이 있다면 절약하여 자선에 지출해야 할것입니다.
자선의 큰 장애물은 돈 욕심보다도 생활의 안정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유혹이 방해꾼이 됩니다.                                   --------   끝  ------

{ 순전한 기독교} 저자 C .S 루이스  번역 :장경학.이종태   홍성사
    ---- 순전한 기독교 중에서  2019. 8. 27  金  鍾 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