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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무게 (The weight of glory)
저자: Clive Staples Lewis   번역 : 홍  종  락   . 홍 성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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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 했으나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으나 1929년 회심한후 논리적이고 명료하며 뛰어난 문학가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기독교 사상가,시인,작가,비평가 및 영문학자로 1947년도에
기독교 변증가 이자 지난 40년간 복음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술가란 
평을 받았다.이책은 저자가 강연한 내용이나 설교및 설교원고 또는 교회 교구회보에
실린 글들의 원고를 수집하여  집필한 것이다.

1.영광의 무게 The weight of glory ------------------ 천국과 인간의 영원한 가치
2.전시의 학문 Learning in war-time-------------전쟁 중에도 학문에 힘쓰는 이유
3.나는 왜 반전론자가 아닌가?Why I am not a pacifist----------전쟁에 대한 태도
4.변환 Transposition---------------------------------- 방언과 초자연적 현상 이해
5.신학은 시(詩)인가? Is theology  poetry----------------------- 신학을 보는 관점
6.내부 패거리 The inner ring--------------------------------특권층 지향 욕구 통찰
7.멤버십 Membership--------------------------------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넘어
8.용서 On  forgiveness----------------------------------------참된 용서 실천 방법
9..실언 A slip of the tongue-------------------------------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
# 편집자의 글(월터 후퍼- <루이스재단 문학 자문위원>가 루이스 생전 모든 환경과
생각 그의 생활들을 많은 분량으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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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시(詩)인가? ( Is  theology poetry?)

기독교 신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또 그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들의 모음."이라 생각합니다.세계의 종교중 신학을 가진 종교는
소수며 시는 신학보다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신학이 시인가?"라는 질문은
"신학이 시에 불가한가?"라는 뜻이다.이 질문은 신학이 제공하는 진리는 일부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기껏해야 시가 제공하는 진리 정도에 불과한가 라는 것이다.
신학이 시라면 그리 좋은 시가 아니다.일신론 개념의 웅장함도 다신론의 풍성함도
없고 미래에 초현실적인 상태와 위상을 가진 피조물이 존재하게 될 거라는 주장은
있지만 그들의 본성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거의 없다.우주 전체 이야기가 비극적
요소로 가득하나 비극은 아니다는 것이다.기독교가 신화에 불과하다면 그리스 
신화나 북 유럽 신화보다 좋지 않은 신화다.아이들이 스스로 곰과 말인 체하여
상상력을 즐기지만 자신이 곰과 말이란 환각에 빠지는 아이는 없는 것 같이
오늘날 현대 시인들과 문학가들은 작품에서 그리스의 신화를 즐기고 있다.

신학 안에 시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학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 어느 정도의 시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인간은 시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기독교 초기의 신학은 원시 종교의 요소들이 많아 우리에게
시적으로 보일수 있습니다.기독교 신학은 모든 인간에게 얼마간의 신적 조명이
주어 졌다고 말합니다.이교도나 신화 창조자들의 이야기 줄거리 테마가 성 육신과
죽음과 부활의 테마로 이루어 졌으나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기독교의 이야기는
이름이 알려진 로마 총독 치하에 처형 당한  역사적이며 그가 세운 종교가 지속되어
오는 실제 사건으로 거짓과 참의 차이가 있습니다.구약성경 앞부분의 진리는
전설적,신화적 형식으로 표현 되었지만 그 진리가 서서히 압축되고 역사적이 됩니다.
노아의 방주,해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는 사건 부터 다윗왕의 회상록 까지 내려
오며 마침내 신약성경에 진리가 몸을 입습니다."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
존재론적 사실로 "신화가 사실이 되었다." 모든 것의 본질적 의미가 신화의 "하늘"
에서 역사의 "땅"으로 내려 왔습니다.신화가 사실로 하나님이 인간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신약성경이 구약성경보다 시적이지 못함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광을 
비우고 인간이 된것 처럼 형식뿐 아니라 실재 내용이 시적이지 못해 졌습니다.

신학은 비유적이거나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는 점은 시와 같은 많은 공통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하늘에 물질적 궁전을 갖고 계시며 그분 보좌 우편에 
화려한 의자로 아들을 영접하셨다 믿었습니다.2세기 교회에 와서 1세기 교인들이 
믿음을 생각할 때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이미지를 활용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초기 교인들은 껍데기를 까지 않은 호두를 지닌 것과 같았고 껍데기가
깨지는 순간 어느것을 버려야 할지 알았습니다.바보가 아니기에 호두 전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비유와 상징이 없는 형태로 우리 신앙을 진술하라는 요구에 물리적 현상
외에 다른 것들에 대한 언어는 모두 비유적일수 밖에 없습니다.과학의 밀물은 전통적
믿음을 위협하고 과학적 세계상을 믿으라 하며 그들의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관찰한
사실로 부터 추론된 결과물이라 주장하지만 실험실에 있는 인간인 과학자의 사고
법칙을 따른 것이며 다시 말해 절대적인 이성이 없었다면 그 믿음의 요구는 명백한 
모순일수 밖에 없다.그안에  진짜 요소들이 많지만 과학적 우주론을 원칙상 
신화로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보편적 진화설은 우주의 흐름이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초보적인 것에서 정교한 것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란 믿음입니다.본능에서 사고(思考)
로,물질에서 정신으로,무생물에서 생물로,무질서에서 질서가 나왔다는 현대인의
뿌리 깊은 정신 습관입니다.진화 개념을 명백하고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은
순전한 환각 때문입니다.

과확적 우주론은 틀린 것이 분명합니다.철학적 관념론이나 유신론에 더 가까워 지고
진지하게 살펴보니 관념론은 위장된 유신론이 였습니다.유신론을 받아 들이니 
그리스도의 주장을 무시할수 없었습니다.저가 기독교 신학을 받아들일 때 과학
전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물질에 앞서는 절대 이성이
있고 그 빛이 유한한 지성을 밝혀 주는 관찰과 추론에 의해 우리가 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우주론을 통째로 받으면 기독교와 조화도
과학과도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꿈속 세상이 실제성이 떨어짐은 깨어 있는 세상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 입니다.과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학적 관점으로 옮긴 것이 
꿈에서 벗어나 깨어난 상태로 옮긴 것이라 확신하며 기독교 신학은 과학,예술,도덕,
기독교 보다 하위 종교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 기독교
를 믿습니다.그것을 보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끝--

2019.  8.  8   金  鍾  漢